요즘 들어 TV에서 하는 여러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 같이 크릴 오일이 엄청난 효능들을 가지고 있다며 홍보하기 일쑤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열렬한 홍보 덕분인지 어느 샌가 홈쇼핑에서도 크릴 오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TV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과 홈쇼핑 사이에는 뭔가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아, 뭐,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하여튼,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에서 소위 전문가(랍시고)들 여러 명이 모여 앉아 전해 주는 크릴 오일의 효능에 대해 듣고 있다 보면, 이 크릴 오일이라는 게, 거의 만병통치약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혈행 관련 효능은 그야말로 엄청나기 짝이 없다. 혈관 건강을 위해서는 크릴 오일 제품을 꼭! 사 먹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크릴 오일의 대표적인 효능들은 다음과 같다.
1. 오메가 3, 6, 9 지방산이 풍부하다.
-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 주고 중성지방을 녹여 주어, 혈행을 개선해 주고 내장지방과 뱃살을 빼 준다.
2. 세포막의 구성성분, 뇌세포막의 60%를 차지하는 인지질이 함유되어 있다.
- 뇌의 노화를 방지하고, 동시에 물과 기름을 잘 섞이게 해 체내의 나쁜 기름때를 제거한다.
3. 붉은색 아스타잔틴이 함유되어 있다.
- 항산화작용으로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를 방지하고 세포 재생을 돕는다.
오오오, 그야말로 효능들이 빵빵하다. 이렇게 몸에 좋은 거라면 얼른 하나 질러야지! 하고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 충격적인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기사 曰, 세상 쓸데없는 게 크릴 오일이란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아직 학자들 사이에 갑론을박 중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크릴오일은 아직 탁월한 의학적 효과를 주장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며, 크릴 오일의 효능이라고 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데 그렇게 건강 전문가들과 홈쇼핑에서 크릴 오일을 띄우고 있었단 말이야?
어디 한번 크릴 오일의 효능들에 대한 반박 의견을 살펴보자.
1. 오메가 3, 6, 9 지방산이 풍부하다?
- 새우 등 갑각류에서 추출한 크릴 오일은 흡수율이나 생체이용률이 높을 뿐 DHA나 EPA 등 주요 성분의 함량이 오메가 3에 비해 훨씬 낮다고 한다. 따라서, 같은 크기의 알약으로 비교해 보면, 오메가 3 알약 하나에 들어 있는 주요 성분의 함량만큼을 크릴 오일 알약으로 섭취하기 위해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크릴 오일 알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2. 세포막의 구성성분, 뇌세포막의 60%를 차지하는 인지질이 함유되어 있다?
- 인지질은 몸속에서 합성되므로 꼭 섭취해서 채워 줘야 하는 물질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크릴 오일에 들어 있는 인지질이 의학적 효과가 있다는 어떤 연구 결과물이 아직 없고, 다른 식품을 통해서도 인지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비싼 돈 주고 크릴 오일로 인지질을 섭취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단, 인지질에 오메가 지방산의 비율이 높기는 한데, 말했다시피, 오메가 지방산은 크릴 오일보다 더 나은 섭취원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굳이 크릴 오일로 섭취할 필요가 없다.
3. 붉은색 아스타잔틴이 함유되어 있다?
- 아스타잔틴은 갑각류의 붉은색에 들어 있는 카로티노이드계 색소인데, 시험관 실험에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 우리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없애 준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또한 아스타잔틴 구조상 혈액 속에 흡수되지 않을 수도 있고, 설령 흡수가 되다 하더라고 크릴 오일 속 아스타잔틴 함유량은 극히 미미해서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산에 계신 어느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크릴 오일 1000mg에 아스타잔틴이 0.36mg 함유되어 있다고 볼 때, 70kg의 성인이 100mg의 아스타잔틴을 섭취하려면 크릴 오일 1만 9천 알(헐!)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항산화제로 비타민C를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나 뭐라나....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크릴 오일이 아직 건강 보조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크릴 오일의 기능성에 대한 확실한 의학적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건강 보조 식품으로 식약처 인증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 다시 말해, 크릴 오일은 아직 의학적 효과를 볼 수 있는 건강 보조 식품이 아니라 그냥 일반 식품인 셈이다. 건강 보조 식품도 아닌 크릴 오일을 굳이 다른 오메가 3 제품들보다 4-5배는 비싼 돈을 주고 섭취할 필요가 있을까?
슬슬 혈행 관련 건강 상태가 걱정되기도 하고, 또 TV 건강 프로그램에서 그렇게나 효능이 좋다고 떠들어 대니, 한번 챙겨 먹어 보려 했거만, 이건 아니지 싶다. 차라리 TV 보면서 사차인치나 씹어먹는 게 낫지.
제아무리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효능도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식품을 그저 유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유행 따라 섭취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식약처에서 일반 식품이라고 땅!땅! 못박고 있는 크릴 오일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홍보해 제끼고 있는 소위 전문가 양반들은 (심지어 누군가는 TV 광고에까지 출연하면서) 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러고 있는 건지 이유가 궁금하다.
ps. 그런데 크릴 오일 제품을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서, 어차피 나는 크릴 오일을 섭취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왜? 바로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다.
생선이나 해조류 오일로 만드는 오메가 3와는 달리, 크릴 새우로 만드는 크릴 오일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는데, 갑각류 알레르기가 심한 경우에는 자칫 기도가 부어 올라 호흡 곤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여태껏 갑각류 알레르기가 없었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자. 어렸을 때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없다가 (나처럼) 뜬금없이 나이 들어 생길 수도 있으니 반드시! 알레르기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릴 오일을 먹지 말아야 하는 범 지구적인 이유 한 가지!!!
이렇게나 건강에 별다른 이득을 주지 못하는 크릴 오일을 추출하느라, 현재 남극에 있는 크릴 새우의 80퍼센트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남극의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소리이다.
크릴 새우는 평균 길이 1-2cm 정도의 작은 갑각류로, 남극 바다에 사는 대왕고래부터 작은 물고기까지 이 크릴 새우를 주식으로 삼고 있다.
크릴 새우 크릴 새우는 밤에 바다 표면에 올라와 식물 플랑크톤을 먹고 배가 부르면 깊은 바다로 내려가 배설을 하는데, 그 결과, 식물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하면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바다 밑바닥에 격리시키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크릴 새우는 자동차 3500만대가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한다고 한다. 크릴 새우가 지구 탄소 순환에 기여하여 지구 온난화를 막아 주는 구실을 한다고 할까?
물론,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량에 비한다면 크릴 새우가 제거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그리 엄청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크릴 새우가 제거하는 탄소량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크릴 새우를 먹이로 삼는 고래들이야말로 지구 공기의 이산화탄소 중 30%를 흡수하고 지구 공기에 산소를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들인데, 그들의 먹이인 크릴 새우를 남획하면 이러한 고래들의 존속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크릴 오일을 한 병 만드는 데 크릴새우가 1만 6천 마리 들어간다고 하는데, 한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크릴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라고 하니, 대체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증명되지 않은 효능과 부작용부터 생태계 파괴와 지구온난화에 이르기까지, 이 수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굳이 크릴 오일을 섭취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