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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버전 : 도로시 L. 세이어즈(Dorothy L. Sayers)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증인이 너무 많다>의 저자인 도로시 L. 세이어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이자 저술가이며 번역가이자 신학자로서, 영국 추리소설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에 필적할 만한 작가라고 한다.

그녀는 옥스퍼드의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이었는데, 광고회사를 다니던 1923년 첫 소설인 <시체는 누구?(Whose Body?)>를 발표했고, 1927년에 <증인이 너무 많다>를 발표했다.

그녀의 추리소설 속 탐정은 피터 데스 브레든 윔지 경(Lord Peter Death Bredon Wimsey)으로, 덴버 공작의 동생이며 옥스퍼드를 수석 졸업하고 영국 육군에 복무했으며, 취미가 범죄학 서지학, 음악, 크리켓인 귀족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생계에 관심 가질 필요 없는 신사가 취미로 범죄를 해결할 때, 이들을 가리켜 '상류층 탐정(Gentleman Detective)'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류층 탐정이 등장하는 고전 추리소설의 모델을 제시한 작가가 바로 도로시 L. 세이어즈라고 한다.

 

그녀가 창조해 낸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의 모토는 '변덕이 내키는 대로'인데, '변덕'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whimsy는 피터 윔지 경의 성인 윔지와 발음이 거의 같으므로, 피터 윔지 경의 진정한 모토는 '내 맘 내키는 대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모토 그대로, 피터 윔지 경은 제멋대로 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데에 가고, 경찰 따위 못 믿겠다, 내가 직접 사건을 해결하겠다 싶으면 직접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한다.

이 <증인이 너무 많다> 역시 피터 윔지 경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자신의 형을 위해 직접 사건에 뛰어든 경우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새벽 3시, 덴버 공작의 사냥 별장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덴버 공작의 여동생인 메리 윔지의 약혼자 데니스 캐스카트로 집 옆에 붙은 작은 덤불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공교롭게도, 발견자인 덴버 공작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궁지에 몰린다. 이때 덴버 공작의 동생인 피터 윔지 경이 형을 위해 사건 수사에 직접 뛰어드는데, 수많은 증인들과 사연들이 엇갈리는 가운데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증인이 너무 많다>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은, 작가가 살고 있던 시대적 상황을 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다소 눈에 거슬리는 내용들이 없지 않아 있다.

신분제에 따른 차별, 소위 지식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던 사회주의 이념, 고위 귀족의 비도덕적 행위, 영국과 대륙 사이의 문화적 차이, 고전적(이지만 차별적)인 여성관 등등.

게다가, 작품 후반부에 가면, 고위 귀족을 재판하기 위해서는 따로 귀족 재판 법정을 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딱히 이럴 필요가 있나 하고 의문이 생길 정도?

하지만 이 모든 단점들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소설의 짜임새가 무척 훌륭하다.

피터 윔지 경이 사건을 풀어 나가다 보면,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물처럼 엮여 있는데, 이러한 관계들이 캐스카트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도로시 L. 세이어즈의 필력이 돋보인다.

또한 셜록 홈즈처럼 날카로운 성격과 명석한 두뇌를 가진 비범한 탐정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느긋한 구석이 있는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이 전해 주는 유쾌함도 나쁘지 않다. 아니, 그로 인해 꽤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 그리고 잊지 말자, 번터.

도로시 L. 세이어즈의 다른 작품들은 아직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 내에서만큼은 피터 윔지 경의 하인인 번터의 매력이 그 주인을 능가할 정도랄까. 겉모습은 모르겠지만, 매너며, 능력이며, 충성심이며, 어디 한 군데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다.

덧붙이자면, 시공사에서 나온 이 책의 좋은 점은 궁금해할 구석이 있는 곳마다 주석이 달려 있어서 책을 읽는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지적 편식쟁이에게는 구글링이 필수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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