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은 책 버전 : 리타 라킨(Rita Lakin) 지음, 이경아 옮김 / 좋은생각
저자인 리타 라킨(Rita Lakin)은 20년 동안 여러 드라마 및 미니 시리즈의 극본을 담당하고 지금도 미 전역에서 인기리에 공연 중인 희곡을 쓴 작가로서, 미국 작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상과 '에드거 앨런 포 상'을 포함한 다수의 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데, 이 리타 라킨이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미스 마플(Miss Marple)을 모티브로 하여 글래디스 골드(Gladys[Glady] Gold)라는 노부인 탐정을 창조해 냈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단지 번역글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매끄럽게 읽히는 것을 보고, 다른 책보다 쉽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빌려 온 것이었다. 나중에 저자인 리타 라킨에 대해 알고 나니, 아, 극작가가 쓴 소설이라서 그리 쉽게 읽혔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코지 미스테리(cozy mystery)라는 장르의 특성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남편 사별 후, 플로리다로 이사 와서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75세의 글래디스 골드 여사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을 해 나가고 있던 중,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던 할머니들 중 생일을 맞은 할머니들이 생일 전날 선물을 받고 연쇄적으로 사망한다. 하지만 사망자들이 모두 연로한 할머니들이었기에 경찰은 그들의 사인을 심장마비라는 자연사라고 단정 짓는다. 이때 추리소설의 애독자인 글래디스 골드 여사가 자연사가 아니라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사실, 미스 마플 같은 전지(全知)의 탐정을 기대하고 집어 든 책이었지만, 글래디 여사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다. 탐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탐정 정신이 가득한 민간인?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완벽한 탐정이 아니기 때문에 되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은 탐정이었다.
게다가, 나이 든 할머니 탐정답게, 중요한 힌트를 잊어버려서 한참을 헤매기도 하고, 관절염 때문에 범인과 몸싸움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일견 우울해 보이는 묘사일 수도 있지만, 그리 심각하게 그려지지 않기에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 주는 양념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무엇보다, 드라마나 희곡을 쓰던 작가라서 그런가, 머리속으로 한 장면 한장면을 구성해 가다 보면, 매우 짜임새 있는 미니 시리즈 한 편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짧은 호흡의 문장, 빠른 스토리 전개,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자칫 비호감을 줄 수 있는 직전에 멈춰 서는) 캐릭터들, 그리고 완벽한 기-승-전-결에 따른 사건 해결까지, 오, 이 미니 시리즈 괜찮은데?
이 책 <맛있는 살인사건>을 다 읽고 난 후 역자 후기를 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혹시 이거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내 감상과 똑같았기 때문에.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모두 비슷한 감상평을 내지 않을까.
역자 왈,
생명이 잉태된 순간부터 조금씩 늙어온 주제에 할머니라고 우습게 봤다니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도 말한다.
'이 소설을 읽으니 늙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런 거짓말은 차마 못하겠다. 여전히 나는 늙는 것이 싫고 두렵다. 하지만 할머니가 되어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재미있는 추리소설이 옆에 있다면 그런 삶은 그런 삶대로 행복하고 즐겁지 않을까.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어찌저찌 나이듦에 적응하며 그런 대로 재미와 행복을 찾아 나가는 것.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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